마카오 관광정보 민박과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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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세계문화유산의 등록명인 '동서양 역사의 중심 마카오 (The Historic Centre of Macau)'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 어떻게 융화되고, 공존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의 증거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문화를 동시에 볼 수 있고, 역사의 프레임 속에서 서양의 문물에 대한 중국의 지속적인 개방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다른 문화와 문명 사이에서 서로간의 상호 존중과 관용으로 보다 값진 역사의 열매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도시의 화려한 건축물들과 오랜 전통이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중심 마카오'는 단지 중국의 일부 지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두 개의 문명의 만남이 중국과 세계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살아 있는 증거들로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중국의 31번째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인정은 역사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더욱 높였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다양한 역사 유적들에 대한 보호 속에서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도시 개발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동서양 역사의 중심 마카오

'역사의 중심 마카오'는 구 시가지 중심부의 동?서양의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포함되어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라 광장, 릴라우 광장, 세나도 광장, 성 오거스틴 광장, 대성당 광장, 성 도미닉 광장, 예수회 광장, 까모에스 광장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광장들은 20개 이상의 상징적인 유적지와 연결되어 있는데, 아마 사원, 무어리쉬 배럭, 만다린 하우스, 성 로렌스 성당, 성 조셉 신학교 및 성당, 돔 페드로 5세 극장, 로버트 호 퉁 경의 도서관, 성 아우구스틴 성당, 릴 세나도 빌딩, 삼카이뷰쿤(콴 타이사원), 자비의 성채 (자애당), 대성당, 로우 카우 맨션, 성 도미니크 성당, 성 바울 성당의 유적, 나차 사원, 구 시가지 성벽, 몬테 요새, 성 안토니오 성당, 까사 정원, 신 교도 묘지, 기아 요새(기아 예배당과 등대 포함) 등이 그것입니다. 이 모두를 통틀어 '역사의 중심, 마카오'라고 명칭하고 있으며, 이는 마카오의 세계 문화 유산을 명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카오세계문화유산 홈페이지 참조 Website of Macau World Heritage: http://www.wh.mo 아마 사원 (A-ma Temple)

아마사원은 마카오라는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사원에는 '신상제일'전(神山第一殿), 홍인전(弘仁殿) , 관음각(觀音閣)과 불상등이 있습니다. 각기 다양한 신을 모시고 있는 신전이 있는 아마사원은 각각 유교, 도교, 불교뿐만 아니라 다수의 토착 신앙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무어리쉬 배럭 (Moorish Barracks)

1874년 건축된 무어리쉬 배럭은 마카오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인도 고아(Goa)로부터 파견된 인도 고아인 용병을 수용하기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카오의 해상 행정국의 본부를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물의 모습에서는 무굴제국의 요소가 가미된 신 고전주의 양식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릴라우 광장 (Lilau Square)

릴라우의 지표에서 나는 물은 예전 마카오의 주요 수원이었습니다. 유명한 포르투갈의 속담중에 '릴라우의 물을 마셔본 사람은 결코 마카오를 잊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에 대한 마카오인의 애정은 각별합니다. 이지역은 처음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서 거주했던 지역 중 하나입니다. '만다린 하우스 (Mandarin's House)

1869년에 건축되었고,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 정관잉(鄭觀應)의 고택이었으며, 여러가지 모양의 창과 지붕, 집의 상부구조, 건축 재료 등은 주로 중국 전통방식으로 설계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색 벽돌의 사용과 인도 스타일의 천정, 문틀, 창문 개폐방식 등과 같은 다양한 이국적인 양식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성 로렌스 성당 (St. Lawrence's Church)

마카오의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인 성 로렌스 성당은 원래 16세기 중반에 예수회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현존하는 모습은 1846년의 재건된 것입니다.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카오 반도 남쪽 해안에 자리잡은 이곳은 포르투갈 선원들의 가족들이 선원들의 안전 귀항을 기원하며 기도 드리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펑순탕 (Feng Shun Tang) - 바람을 잠재우는 곳 - 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성당의 주변 지역은 부촌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를 두고 성당의 영광 때문에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당 외부 장식은 바로크의 영향을 받은 신 고전주의 스타일로 설계되었습니다. 성 요셉 신학교 및 성당 (St. Joseph Seminary and Church)

이 신학교는 1758년에 성바울 대학과 함께 건축되어 중국과 일본 등 각지에 다수의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 신학교는 대학과 동일과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을 양성 했으며, 1800년대 포루투갈의 여왕인 도나 마리아 1세로 부터 '사명감으로 뭉친 집' 이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신학교 옆에 있는 성 요셉 성당은 1758년에 건축되었으며, 중국에서의 바로크 양식이 적용된 대표적인 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2001년 유네스코에서 발간되는 알틀라스 먼디알에 소개 되기도 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틴 광장 (St. Augustine's Square)

이 곳은 성 아우구스틴 성당과 돔 페드로 5세 극장, 성 요셉 신학교 및 성당 그리고 로버트 호 퉁 경의 도서관과 같은 주목할 만한 유적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또한, 조약돌로 된 포장 도로는 전통적인 포르투갈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돔 페드로 5세 극장 (Dom Pedro V Theatre)

300석 규모의 이 극장은 1860년에 지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극장의 주요 부분만이 지어졌고, 1873년에 와서야 신고전주의 풍의 정면까지 완성 되었습니다. 이곳은 중국에 최초로 설립된 서양 스타일의 극장으로, 오랜 기간 마카오인의 문화적 상징물로서 각광을 받았으며, 현재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로버트 호 퉁경의 도서관 (Sir Robert Ho Tung Library)

이 빌딩은 원래 1894년 이전에 지어졌으며, 도나 캐롤리나 쿤하(Dona Carolina Cunha)의 거주지였던 곳입니다. 그러나 1918년에 홍콩의 부유한 사업가인 로버트 호 퉁경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어 그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55년에 로버트 호 퉁경이 별세 하였을 때 그의 유언에 따라 마카오 정부에 공용 도서관으로 사용되도록 기부되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틴 성당 (St. Augustine's Church)

1591년에 스페인 아우구스틴(Augustinian) 사제단에 의해 신학교로 건설되었으며, 부활절때, 도시를 가로지르는 유명한 행진을 매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사제들은 비가 올때마다 지붕을 중국 야자나무 잎으로 덮었다고 합니다. 이때, 바람에 야자나무잎의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용의 수염처럼 보였다고 해서 이 성당의 별명이 "롱송뮤" (龍鬚廟) - 긴 수염을 가진 용의 사원이라는 뜻 - 라고 도 합니다. 릴 세나도 빌딩 ("Leal Senado" Building)

1784년에 마카오 시 의회 건물로 지어졌으며, 지금까지 이러한 기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릴 세나도(Loyal Senate)'라는 이름은 '신의 도시 마카오, 이보다 위대한 것은 없으니' 라고 1654년 포루투갈의 왕 돔 존 4세가 부여한 것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릴 세나도' 빌딩은 신 고전주의 디자인의 장식과, 원본 그대로의 벽과 뼈대, 뒤뜰의 정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1층에는 포르투갈 스타일의 작은 도서관과 작은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의전을 진행하던 회의실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나도 광장 (Senado Square)

세나도 광장은 초창기부터 이어온 마카오의 중심지로서, 현재에도 많은 공식적인 행사와 축제 장소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전 의회 빌딩 근처에 자리한 전형적인 삼카이뷰 쿤 사원 또한 중국인들의 행사에 중요한 장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마카오만의 독특한 포용과 공존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광장 양면의 건물들은 파스텔 빛의 신 고전주의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유럽의 우아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관광객들과 현지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삼카이뷰쿤 (Sam Kai Vui Kun) ; 콴 타이 사원 (Kuan Tai Temple)

이 사원은 최근에는 성 도미니크 시장으로 불리는 오래된 중국식 시장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곳은 상인들의 회의 장소였으며 현재 중국인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서 이용 되고 있습니다. 서양풍의 건축물들과 이국적인 광장으로 이름난 중심부에 가장 중국적인 사원이 오랜 시간 동안 본래의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2가지 문화의 공존과 번영이 낳은 마카오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비의 성채 (Holy House of Mercy); 자애당

자선 사업을 위해 지어진 이곳은 1569년 마카오의 첫 주교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의 유명한 자선 단체를 모델로 만든 이곳은 마카오의 첫 서양식 병원으로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다양한 사회 복지에 대한 기초를 만든 곳입니다. 신 고전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옆문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박물관에는 선교와 관련한 다양한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성당 (Cathedral)

이곳은 1622년에 타이파섬에 진흙과 갈대로 지어진 카톨릭 성당입니다. 1780년의 재건축 동안, 그동안에 지켜져 오던 종교적인 행사들은 자비의 성채의 옛 예배당으로 옮겨 졌습니다. 건물의 정면은 기둥과 두개의 종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외벽은 상하이 석고로 발라져 모놀리식 외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우 카우 맨션 (Lou Kau Mansion)

1889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저택은 도시 곳곳에 고급 저택을 소유했던 중국의 부유한 사업가 '로우 카우'의 가족이 거주하였던 곳입니다. 이 오래된 저택의 위치는 과거"크리스천 도시"의 중심지인 세나도 광장과 대성당 광장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다양한 사회적 단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중국 스타일의 청회색 벽돌을 사용하여 지은 이층 집으로, 후기 청 왕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인 '시관' 스타일을 따르고 있습니다. 성 도미니크 성당 (St. Dominic's Church)

본래 멕시코의 아카풀코에서 건너온 3명의 스페인계 도미니카 사제들에 의해 1587년에 건축되었으며, 이 성당은 성녀 로자리의 형제애 (Brotherhood of Our Lady of the Rosary)라는 곳과 이어져 있습니다. 중국땅에 발간된 첫 포르투갈 신문 (1822년 9월 12일자 [차이나 삐])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건물 뒷편의 종탑은 작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약 300점을 공예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성바울 성당의 유적(Ruins of St. Paul's)

성바울 성당의 유적은 1602년부터 1640년에 지어졌고, 1835년에 훼손되었던 마터 데이 성당의 정면과 성당 옆에 위치해 있던 성바울 대학의 잔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옛 마터 데이 성당과 성 바울 대학, 그리고 몬테 요새는 모두 예수회의 건축물로 마카오의 "아크로폴리스(성채)"로서 여겨졌습니다. 근처에 성 바울 대학의 오래된 고고학적 유물들이 그들의 정교한 학술 프로그램과 함께 극동에 지어진 첫 유럽풍의 대학임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 바울 성당의 유적지는 도시의 제단으로서의 상직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차 사원 (Na Tcha Temple)

1888년에 지어진 이 사원은 당시에 급속도록 퍼지고 있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나차에 바쳐진 곳입니다. 성바울 성당의 유적 바로 뒷 편에 위치하고 있는 나차 사원은 마카오가 중국과 서양의 문물이 공존하면서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며 다양한 문화의 정체성과 종교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마카오의 대표적인 매력 중에 하나 입니다. 구 시가지 성벽 (Section of the Old City Walls)

1569년 초기부터 포르투갈인들은 마카오 주위에 성벽을 쌓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는 포르투갈인들이 외부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아프리카나 인도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독특한 것은 현지의 재료와 기술을 혼합하여 포르투갈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완성하였다는 것입니다. 진흙, 모래, 볏집, 자갈, 귤껍질등을 혼합한 춘암보 (Chunambo)는 성벽의 주재료가 되었습니다. 몬테 요새 (Mount Fortress)

몬테 요새는 1617년에서 1626년 사이에 건축되어 사다리꼴 모양으로 약 10,000 평방 미터 지역을 점유하고 있으며 마카오의 방어를 위한 중심 요새입니다. 이 요새는 대포, 병영, 우물 그리고 약 2년을 견딜 수 있는 군수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새의 네 개의 모퉁이는 보호벽을 형성하기 위해 돌출되어 있습니다. 성 안토니오 성당 (St. Anthony's Church)

1560년 이전에 대나무와 목재로 만든,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한 곳입니다. 이 곳은 예수회가 마카오에 가장 처음으로 본부를 설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성당은 몇 번의 재건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성당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성당입니다. 과거에는 많은 포르투갈인들의 결혼식이 이 성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중국인들은 그것을 화봉통「花王堂」 - 꽃들의 성당 -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까사 정원 (Casa Garden)

1770년에 포르투갈 귀족이자 정치가이며 부유한 상인인 마뉴엘 페레이라 (Manuel Pereira)의 여름 별장으로 건축되었으며, 마카오에서 가장 좋은 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에 동인도회사에 대여를 했으며, 현재는 동방기금재단 (Oriental Foundation)의 본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교도 묘지 (Old Protestant Cemetery)

신교도 묘지는 마카오의 다양한 커뮤니티의 측면에 대한 식견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카사정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곳은 마카오의 초기 신교도인 커뮤니티의 광범위한 기록을 보여 줍니다. 묘지와 함께 1821년에는 로버트 모리슨(1782-1834)을 기리며 오늘날 "모리슨 예배당"이라고 불려지는 예배당이 설립되었습니다. 18세기에 마카오에서 살았던 위대한 화가 죠지 쉬너리, 대영제국 드루이드호의 함장이자 윈스턴 처칠의 조상인 존 스펜서 처칠 경 등 역사 속의 유명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저명 인사들과 함께 동인도회사의 직원들과 미국과 영국 출신의 신교도인들도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기아요새 - 예배당과 등대 (Guia Fortress- Chapel and Lighthouse)

기아요새는1622년에서 1638년 사이에 지어졌습니다. 요새 안에는 성 클레어 수녀원이 설립되기 전 이 지역에 거주했던 클라리스트 수녀에 의해 지어진 기아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의 벽화들에는 전통적인 동양식 의복을 걸친 천사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중국과 서양의 문화적 특징들이 오랫동안 마카오에서 융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56년에 지어진 등대는 중국 해안에 세워진 최초의 현대적 등대로 기아요새는 예배당과 등대와 함께 마카오의 해사, 해군 그리고 선교사들의 과거를 잘 나타내 주는 상징적인 건축물 입니다.

[뉴스파인더 스타채널 임화찬 데이타 저장소 인터넷 민박집 발취]


Source from http://newsfinderstar.tistory.com/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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